다문화 이주민을 향한
한국 교회의 선교적 과제
이성순
목원대학교 다문화사회통합연구교육센터
특임교수
1. 들어가는 말
발제자는 다문화 사회의 도래에 상응하여 한국 교회가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선교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네 가지 부분으로 대별하여 기술하였다.
첫째, 이주민에 대한 정의,
둘째, 한국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의 실태,
셋째, 이주민 선교를 위한 성서적 고찰,
넷째, 다문화 사회의 이주민선교를 위한 신학,
마지막으로 이주민 선교에 따른 과제와 대안을 제시하였다.
본 고에서는 발제 내용 가운데 마지막 부분인 이주민 선교의 과제와 전망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다문화 한국 사회에서의 이주민
일반적으로 다문화란 성별, 종교, 직업, 계층, 인종 등에서 비롯되는 각 사회집단들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주류 또는 비주류 집단들의 문화를 동등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한국에서 다문화의 중요성은 우리 사회가 이미 다문화사회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세대간의 단절을 경험한 우리 사회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다인종, 다민족을 이해하고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미흡하였다.
외국인근로자, 결혼이민자, 새터민, 난민, 재외동포, 그 외 다문화가정 자녀 등에 대한 권리 존중과 사회적 존재로 새롭게 인식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경제적, 사회적 도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배경과 그에 따른 권리를 가진 사회적 존재로 새롭게 인식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3. 한국교회의 사회 복지 활동의 실태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은 종교 인구의 증가율에서 알 수 있는데 최근 몇 년간의 종교 인구의 증가세를 보면 불교는 10년 전에 비해 3.9%(40만 5천명), 천주교는 74.4%(219만 5천여 명), 원불교도 2배(13만 명)가 증가한 반면에 개신교는 오히려 1.6%(14만 3천여 명) 감소했다는 통계청의 종교인구(2006.5)에 관한 통계에서 알 수 있다.
교회의 대 사회적 공신력의 회복은 교회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실천적 행동, 즉 교회의 사회복지 실천으로 귀결 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교회가 실시했던 프로그램으로서 1989년에는 청소년과 아동복지 분야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그 비율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이며 노인에 대한 서비스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보사연의 연구에서는 교회가 앞으로 해야 할 서비스의 순위에서 노인에 대한 서비스가 29.5%로서 압도적이었고 그 다음이 청소년과 장애인이 각각 16.7%와 15.8%로 나타났다. 아동에 대한 서비스는 8.6%에 불과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국교회들의 다문화 복지에 대한 낮은 인식과 실천의 부분에서 미약함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지만 교회 사회복지의 최근 현상가운데 교회의 사회복지비 비율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교회의 공신력 회복을 기대해 볼 수 있다.
4. 다문화 사회의 이주민선교를 위한 신학
1) 관계회복을 위한 대안 공동체 신학
관계회복을 위한 신학으로서 첫째 차별문화 극복을 전제한 관계 ‘회복의 신학’, 인간관계 회복으로서 '코이노니아 신학', 다문화 공동체 형성으로서 '콘비벤츠'로 구분지어 볼 수 있다.
첫째, 차별 문화 극복을 위한 '관계 회복의 신학'에서 차별극복이란 차별 상황의 해체 및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모든 인간의 공동체적 관계의 재정립에 있다.
타자와의 만남에 기초한 선교론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선교론은 선교사와 피선교지 사람간의 의사소통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해석학적이고, 문화와 문화를 다루는 학문이다.
둘째, 성서읽기에 전제해야 할 것은 상호 들음과 성령을 위한 자리마련이다.
셋째, 일치는 서로를 용납하고 타자와 공존하고 더불어 살게 하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교회가 이것을 받아들일 때 교회는 배우는 공동체, 돕는 공동체, 경축하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넷째, 선교론은 이방인에 대한 연구를 그 중요한 의제로 포함시켜야 한다.
다섯째, 해석학적 선교론은 타자, 이방인, 억눌린 자를 강조하기 때문에 그 주된 관심사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 사는 인간들이다. 우리가 구속을 선택할지 화해를 선택할지는 이 상황이다. 해방과 화해는 서로 교환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분리된 개념도 아니다. 대신에 그 둘은 '혼동하거나 분리되지 않고' 함께 속한다.
선교의 기초 역시 관계 회복에서 시작한다. 독일의 신학자 준더마이어(Sundermeier)는 낮선 자와의 만남의 신학을 언급하였다. 타인을 이해하고 그 만남을 해석함으로써 선교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교회는 낮선 자를 통하여 정체성을 갖는다. 나 혹은 교회는 타인과 언제나 '함께 있음'으로써 사회적 차원을 지닌다. 이는 '함께 어울려 삶'이며 '함께 나눔'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 인간관계 회복으로서 '코이노니아 신학'
코이노니아(koinonia)는 화해를 선포하고 치유를 제공하며, 인종과 성별, 연령, 문화, 피부색에 따른 분열을 극복하고, 온 인류가 하나님과의 사귐 관계에 들어가게 하는 일이다.
즉 코이노니아는 관계의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고 성도의 교제를 나타내는 그리스어이다. 교제, 또는 사귐(fellowship)으로 번역 되는 말로서 본래 '어떤 것을 서로 나눈다.'를 뜻하고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샬롬을 실천하는 삶이다.
코이노니아의 특징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약한 자, 고아, 과부, 그리고 소외당한 자들을 보호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핍박 받는 이들에게 피난처와 환대를 제공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예수는 하나님의 백성 속에 천한 사람들을 포함시켰을 때 모든 백성에게 사귐의 기회를 제공했을 때, 이 행동이 긴장의 원인이 되었고 코이노니아는 투쟁과 고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현실성이 되었다고 제시하였다.
온 세계의 섬김, 곧 디아코니아와 코이노니아는 서로 분리 될 수가 없다. 교회 공동체는 윤리적인 목표를 표명하는 모든 사람과 연대하도록 부름 받았다. 교회가 다른 종교 공동체들이 포함된 사회적, 인종적, 민족적 갈등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진정한 코이노니아 안에서 살고 또, 디아코니아에 신실 할 수 있는 한, 교회는 '예언자적 표징'으로서 그 교회를 초월하여 하나님 나라를 완성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3) 다문화 공동체 형성으로서 '콘비벤츠'
'콘비벤츠(Konvivenz)'는 먼저 이웃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한다.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에서는 코이노니아보다 '콘비벤츠'를 더 선호한다. 콘비벤츠는 가까이 살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 함께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콘비벤츠는 공동체의 삶에서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서로에게서 배우는 것도 의미한다.
일상에서 '차이'를 긍정하고 존경한다. 콘비벤츠는 획일적으로 통합시키려 하지 않고, 일치를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생활을 단순하게 이웃과의 관계에서 실현하려 한다. 콘비벤츠는 이것을 '잔치를 벌이는 공동체'를 통하여 실현하려 한다.
일시적이지만 잔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삶의 충만'이 잔치에서 경험되어 지는 것을 말한다. 민중 신학이 다원주의적 입장을 통하여 차이점과 함께 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의 일상생활에서 삶의 충만함, 함께 하는 삶, 차별성 속에서의 융화, 잔치 즉 "차이 문화와 잔치문화"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아쓰만(J. Assmann)은 잔치가 문화와 종교에 갖는 중요성의 의미에 대하여 일상생활의 현상을 통하여 설명해 준다. 첫째는 '우연'의 영역으로서 계산 불가능한 리듬과 우발 성을 들고 있다.
둘째는 '결핍'의 영역으로서 가난한 나라에서는 식량과 옷, 집, 건강 등이며, 부유한 나라에서는 시간과 친구와 의미의 결핍을 들고 있다. 이 결핍으로부터 불만과 시기가 나온다고 본다. 셋째는 '반복'으로서 이는 일상생활을 성격 짓는다.
4) 지역 사회 형성을 위한 공동체 신학
대안형성을 위한 공동체 신학은 고난과 해방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신학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실현되고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앞당기는 참여, 나눔, 연대를 지향하는 공동체적 신학이어야 한다.
특히 선교가 하나님의 구속의지를 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 구속 사건은 현대적 상황에서 하나님의 해방사건의 동참을 의미한다.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경제적으로 착취 받고, 성적으로 차별 받고, 인종적으로 차별 받고, 문화적으로 무시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대안으로서의 공동체 형성을 위한 신학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대안 형성을 위한 공동체 신학은 연대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WCC를 중심으로 한 교회의 에큐메니칼 신학은 일치(Unity)의 문제를 부각시켜왔다. 그러나 일치만으로는 사회,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그리스도인들은 외딴 은둔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원수들 가운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대들의 원수들 가운데 있다. 대안 형성을 위한 공동체 신학의 연대개념은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문제의 고유성을 함께 인정하면서 구원과 해방의 복음적 과제에 함께 협력하고 동참한다는 고난의 나눔(Sharing)이 전제되어 있는데 이러한 나눔과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신앙적 근거 또한 코이노니아 정신이다.
5. 이주민 선교의 과제와 전망
다문화 사회 속에서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의 연습은 전혀 다른 세계와 문화 속에서 살았던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예행연습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국적이나 신분에 의한 차별과 배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주민 선교는 매우 중요하다. 현대 사회는 제3의 물결인 정보화 사회를 넘어 제4의 물결인 상상력과 창조성의 강조되는 다문화 사회이기 때문이다.
1) 국내 이주민 단체의 활성화
이주노동자의 선교적 관점만으로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이주민의 갈등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없다. 다문화 사회의 구성원 간의 갈등은 그 나라와 지역 사회가 서로 다른 나라 출신 이주민 출신들에 대하여 상대의 존중, 역할과 기능의 인정, 참여의 개방이 안정적일 사전 조율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주민에 대하여 그 나라 주류 국민이 배제 혹은 활용의 입장에 설 때 갈등이 노골화 된다. 다문화 한국사회는 신규 노동력의 유입, 저 출산에 따른 결혼 이민자의 증가, 다문화 가정 자녀의 출생 등에 따른 새로운 사회 구성원과 기존 구성원간의 갈등이 점차 축척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이주민 관련 단체들은 170여 곳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체들이 작은 교회나 선교단체들이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이주민단체 대부분이 경제적 매우 열악하다. 교인들이 대부분 이주민들이어서 상대적으로 교회 재정이 매우 열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 단체들은 작지만 큰일들을 하는 교회나 선교기관이다. 다국어 예배 및 전도는 물론 는 물론 갈 곳 없는 이들을 위한 쉼터, 한국 사회 적응 한국어, 문화 교육, 의료지원, 지역사회 갈등해소 등에 적극적이다. 이들 단체 간의 네트워크를 통한 선교적 기능의 활성화가 요청된다.
2. 이주민 선교의 재구성
첫째, 이주민 선교는 다문화적 상황에 적극 대처하고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한다. 선교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을 간파하여 상황의 실재를 변화시키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교는 증거, 봉사, 정의, 치유, 화해, 약자연대, 평화, 전도, 교제, 교회 개척, 상황 대처 등 다방면에서 일어나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주민선교는 다문화사회에 걸맞게 제사장적 선교(섬김과 나눔의 선교), 예언자적 선교(사랑과 정의의 실현과 인간의 존엄성 구현), 지역사회 연합과 협력 선교 등의 측면에서 재구성 되어야 한다.
둘째, 교회는 이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기동성 있는 이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선교 구조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주민 선교사를 초청하든, 이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나서든 한국교회는 이주민과 연대를 통하여 지역 및 국가적 차원은 물론 전 세계적 차원에서 선교를 진행해 나가야 한다.
셋째, 이주민 선교의 통전성 확보이다. 통전적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 정신에 입각해서 복음전도(케리그마)와 양육(디다케)과 사회봉사(디아코니아)와 사귐(코이노니아)을 모두 포함 하는 것이다. 선교는 개인 영혼 구원과 사회개혁과 봉사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지와 구원 행동이다.
넷째, 한국 교회는 이주민과 다문화 지역사회를 섬기는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여야 한다. 교회는 자기 자체
를 위하여 살지 않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지역사회에서 상호 책임을 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인종과 피부와 문화를 초월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와 머리로 하는 형제공동체가 되도록 이주민과 다문화 지역사회를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
3. 이주민의 공적 복지 영역의 확장
사회복지로부터 사각 지대에 놓인 이주민들에 대한 다각적이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주민들의 국제적 이주 중 가장 큰 이유는 경제문제이다. 한국 사회는 경제적인 차원에서 이주민들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복지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한국정부의 소극적인 이주민 정책이 많은 이주민 관련 많은 문제를 야기 시켰다. 정부의 이주민 정책은 기존의 방어적 태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개방이 필요하다.
일시 체류자라 할지라도 가정을 꾸리고 자녀가 잇는 가정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주민들에 대한 실질적인 사회복지서비스를 위해서 서비스 내용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지역자치 단체의 사회복지협의체 및 위원회를 활성화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거주외국인지원조례’에 따른 자문기구와 위원회 구성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지역 이주민 복지와 지역사회 참여 문제를 해결 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6. 나가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주민에 대한 한국 교회의 선교문화가 올바르게 정착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이 전제된다.
첫째, 이주민에 대한 관점과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즉 한국 사회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가족들이 다양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전반적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즉 모든 인종, 국적, 법적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인간답게 취급받을 권리,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특히 질병, 사회 심리적 문제 등으로 취약한 상태에 있을 때는 그들이 이용하기 편한 언어와 문화적 감성을 가진 사람을 통해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주민들이 왜 한국에 와야만 했는지를 우리의 눈으로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문화가 아니라 우리가 변하는 것이 진정한 다문화이기 때문이다.
둘째, 일부 교회에서는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다국어 예배 및 전도는 물론 이들을 위한 쉼터, 한국 사회 적응 교육, 의료지원, 지역사회 갈등해소 등에 동참하고 있지만 이들 교회 대부분이 물적, 인적 인프라의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주민을 지원하는 교회간 또는 소형교회와 대형교회간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선교적 기능의 활성화가 요청된다. 이주민 대상으로 여타의 복지를 수행하는 것 외에도 교육을 실시할 경우 교육 전문가를 통한 체계적, 지속적 교육이 이뤄져야 함은 물론 다양한 수업 컨텐츠와 학습관리 매뉴얼을 개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진정성이 전제된 이주민에 대한 교육복지 실천과 병행하여 ‘회복의 신학’, ‘코이노니아’, ‘콘비벤츠’ 적 선교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