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1) 서울 강남 ㄱ초등교 교사아직도 그 일을 떠올리면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22년간 이어온 교사생활에 회의가 들 정도로 그 충격은 내 삶을 뒤흔들어 놓았다. 나는 아직도 교장이 무시하고 있는 학생 폭력의 트라우마 속에 살고 있다.
지난해 12월 5학년 수업시간이었다. 교실이 소란스러워 아이들에게 손을 머리 위로 올리라고 했다. 그런데 민석이와 준호(모두 가명) 사이에 그만 작은 말다툼이 벌어졌다. 머리에 손을 올리지 않은 민석이에게 준호가 “너 왜 머리에 손 안 올려?”라고 말했는데, 그 말끝에 “너나 올려”라고 하면서 시비가 붙은 것이다. 두 아이를 진정시키고 방금 한 말을 종이에 적으라고 했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민석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내 손을 휘어잡았다.
“내가 왜 적어!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
민석이는 교실 앞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전에도 몇 번 수업시간에 뛰쳐나간 적이 있는 아이였다. 속으론 적잖이 당황했지만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아이를 간신히 잡아 교실 바닥에 눕혔다. 아이는 계속 발버둥을 치면서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내 왼팔을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민석이 너, 경찰서에 알릴 거야!”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석이는 나를 때렸다. 팔에선 통증이 느껴졌고 심장은 벌렁벌렁 뛰었다. 민석이의 입에선 욕설까지 튀어나왔다. 분노 조절이 잘 안되는 상태였다. 담임교사와 학교보안관, 보건교사가 교실로 올라온 뒤에야 아이는 겨우 진정됐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강원학생교육원이 열고 있는 ‘교직원 힐링캠프’에서 교사들이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몸동작을 따라해 보고 있다. | 연합뉴스
▲ 문제해결 대신 입단속에 급급… 교육 고민 대신 잡무에 바쁜 일과
교사들이 하녀처럼 굴러다녀… 아이 아닌 교장 위한 교사인가생활지도를 맡았던 경력도 있고 이전에 심리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을 가르쳐도 봤지만 이제 열 살 된 학생이 교사를 때리는 건 처음 접하는 일이었다. 10분 안에 벌어진 광경에 교실 안에 있던 30여명의 아이들은 여전히 머리에 손을 올린 채 입을 열지 못했다. 공포에 찬 얼굴로 숨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라는 한 아이의 질문에 “응. 선생님은 괜찮아”라고 답했지만 실은 괜찮지 않았다. 눈물이 쏟아질 뻔하는 것을 간신히 참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김 선생님, 이거 어디 밖에 알릴 건가요?” 사건을 보고받은 교장선생님의 첫말씀은 충격적이었다. “김 선생님이 원하는 게 뭐예요?” 소름이 끼쳤다. 교사가 아이에게 맞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외부로 유출되지 않게 입단속만 하려는 거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조사는 물론이고 해당 교사와 문제 학생에게 안정을 취하도록 하고, 이 광경을 지켜본 같은 반 아이들에 대해서도 심리치료를 해야 한다. 아이로부터 받은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받았다.
학교에는 선도위원회조차 구성돼 있지 않아 이 사건을 다룰 수 있는 기구가 없었다. “어떻게 선도위원회가 없을 수 있느냐”고 담당교사에게 물었지만 “구성하는 데 시일이 걸린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학교 측에 수차례 민석이가 위센터에서 교육을 받도록 하고, 나머지 학생들에 대한 심리치료를 병행하며, 학교 내에 상담실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석이가 ‘적대적 반항장애’ 증상으로 추정되기에 전문의 상담을 받아 적절한 조치를 해줄 것을 민석이 부모에게도 말했지만 결국 사건은 아무런 매듭도 지어지지 않은 채 민석이는 열흘 뒤 학교에 나왔다. 교장 재임용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건을 축소하려는 것으로밖에는 안 보였다. 그 일은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
정작 아이들 교육을 고민할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3월 새 학기에 들어서 제시간에 퇴근해본 적이 없다. 3월21일엔 학부모 총회, 4월4일엔 공개수업, 4월8일부터 3주간은 학부모 상담주간이었다. 3주간 15~20명을 상담하느라 목이 다 쉬었을 정도다. 업무사항을 전달하는 교사회의도 일주일에 몇 번씩 열린다. 매주 있는 교사연수에 인사자문위원회, 교권보호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에도 참석해야 한다. 이달 초에도 교사연수가 있고, 이달 말 공개수업을 준비하려면 벌써 시간이 빠듯하다. 4월에는 너무 바빠 열흘은 일기장 검사도 하지 못했다. 내가 바쁜 것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생각에 안타깝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아침 8시40분 출근하는 순간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교실 이곳저곳에서 “선생님!” 하고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1교시 시작 전까지 동시 외우기, 일기장 검사, 수업 준비를 동시에 하느라 정신이 없다. 1교시 시작 시간을 10분 이상 넘기기 일쑤다. 책을 펴는 데만 5분 넘게 걸리면 교과서의 핵심 내용만 전달해도 수업시간이 다 지나버린다. 쉬는 시간 10분에는 숙제 검사를 하거나 공문 처리를 한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시간이 돼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다. 밥을 받긴 하지만 먹지는 못한다. 음식을 쏟는 아이도 있고, 특히 요즘에는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점심시간에 한 명씩 불러서 대화를 하느라 더 시간이 빠듯해졌다. 방과후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40분 만에 점심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교사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허겁지겁이다. 식탁이 아이를 좌우한다고 하지 않았나. 40분 만에 모든 아이가 밥을 다 먹으라고 하는 건 비교육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시간표는 그렇게 짜여 있다.
교육적 의미가 없는 각종 전시성 행사도 교사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다. 우리 학교에서는 과학의 달을 맞아 4월에 500만원 가량 소요되는 과학축전을 열었다. 평소 과학수업을 내실화하면 이런 대회를 열 필요가 없는데 굳이 과학 과목이 없는 1·2학년까지 동원해서 과학축전을 열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날 나는 고무풍선 300개를 묶느라 손이 부르텄고, 아이들은 보호장치도 없이 화학약품이 들어가는 과학실험을 해야 했다. 학교에서는 가족동요제, 예절교실, 학교설명회, 학부모코칭연수 등에도 학부모를 동원한다. 교장선생님의 성과가 되기 때문인 것 같다. 결국 지금의 학교는 교장의 다음 임용에 반영되는 점수를 따기 위해 교사들이 하녀처럼 굴러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교사들이 한 번도 동의한 적 없는 것들을 교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해 추진하고, 부작용이 날 때는 교사들이 수습해야 한다. “학교가 환자수용소 같네요.” 이곳저곳 아픈 선생님들이 속출해 이런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학교가 교사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교사의 존재 이유는 아이들일 뿐인데 본말이 전도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일제식 기말고사를 본다는 이유로 교육청으로부터 경고도 받았다. 한 학년이 같은 문제로 똑같은 시간에 시험을 보는 것이다. 원래는 평가위원회를 열어 시험을 어떻게 볼지 결정하고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시험을 치러야 하지만 거꾸로였다. “이 반, 저 반 문제를 달리할 필요 없이 똑같이 보면 교사들이 편하다”는 이유로 교장선생님은 일제식 기말고사를 밀어붙였다. 한때는 단원평가를 실시하는 것도 학부모에게 사전에 알렸지만 교사들의 반발로 없앴다. 한 학기에 시험만 10번 넘게 치른다. 시험을 본 뒤에는 아이들의 성취도를 포트폴리오로 만들어서 학부모들에게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아이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이런 일을 왜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교사란 무엇인지, 누구를 위해 사는지. 학교 현장을 보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