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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깨진 유리창' 이론(펌글)2024-11-18 04:40
작성자 Level 10
김영수의 경제포롬 
'깨진 유리창' 이론은 원래 범죄심리학에서 나왔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상태가 비슷한 자동차 두 대를 골라, 한 대는 보닛만 열어놓고, 다른 한 대는 앞 유리창을 조금 깬 다음 보닛을 열어두고 골목길에 세워뒀다. 1주일 지난 후 두 자동차 모습은 크게 달랐다. 보닛만 열어둔 차는 먼지가 낀 것 외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유리창이 약간 깨진 차는 배터리와 바퀴가 없어지고, 심하게 파괴돼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즉 유리창이 조금 깨진 것이 아주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
사소한 무질서를 그냥 두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은 낙서나 신호 무시 같은 경범죄를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는 범죄예방학의 중요한 원리로 각광받았다.
 
지난 2005년 마이클 레빈이라는 마케팅 전문가가 깨진 유리창을 경영학에 접목했다. 예컨대 고객의 불쾌한 경험 같은 사소한 실수를 그냥 두면 기업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뜨겁게 달궜던 남양유업 영업 사원의 막말 사건이나 포스코에너지 임원의 승무원 폭행 사건도 대표적 '깨진 유리창'이다.
남양유업 30대 영업 사원이 50대 대리점주에게 막말을 퍼붓는 음성 파일이 공개되면서 해당 기업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사건 하나로 남양유업은 광고와 사회 공헌으로 쌓은 이미지를 단 한 방에 날려버렸다. 불매운동에 따른 매출 하락이나 주가 폭락에 따른 손해도 크지만, 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게 치명적이다.

남양유업 사건은 본사의 과도한 물량 밀어내기를 그대로 받아야 하는 대리점에서 비롯됐다. 목숨을 틀어쥔 '갑'을 상대로 '을'이 통화 내용을 녹음하고 공개할 정도면 얼마나 횡포가 심했을까 짐작이 간다.
기형적 갑을 관계는 단지 남양유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식음료 회사와 유통 대기업, 프랜차이즈 기업에서도 경중(輕重)만 다를 뿐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포스코에너지 상무가 '라면을 제대로 못 끓인다'며 대한항공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도 그동안 포스코가 얼마나 갑의 입장에서 을을 함부로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미국 보험사들은 1931년 발표된 하인리히 법칙(1 대 29 대 300)을 손해 사정에 활용하고 있다. 산업 재해로 사망자가 1명 발생하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중상자가 29명 생겼고, 경미한 부상자 300명이 있다는 이론이다. 남양유업이나 포스코에너지 사건도 벌써 내부에서 곪을 대로 곪았다가 이제야 터졌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기형적 갑을 관계 패러다임이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SNS와 인터넷이 속으로 끙끙 앓아왔던 많은 을의 불만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권위적 갑의 행태가 대중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다. 오죽하면 계약서에서 갑과 을이란 말을 없애고 A와 B나 가·나로 쓰자는 말까지 나올까.
경제 민주화의 목표 중 하나는 전근대적 갑을 문화를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과 자영업자 모두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본사 직원이 대리점이나 가맹점, 거래처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고 예의를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검찰과 공정위는 밀어내기와 리베이트를 요구한 본사 관계자를 철저히 수사해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고객은 거래처, 가맹점, 대리점이다. 혼자만 잘살겠다고 상대편의 피눈물을 짜내는 기업은 반드시 망한다. 함께 성장하고 같이 잘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킬수록 지속 가능 경영을 할 수 있다. 갑이 을을 막 대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고 또 지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