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비겁한 놈이었습니다!" 한신대 2학년이던 1980년 5월, 전두환 군부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전국의 모든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진 가운데 신학과 79학번 동기로 광주가 집이었던 류동운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가 계엄군에 사살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찰의 검거령을 피해 달아난 비겁한 놈이었습니다. 저는 친구 류동운을 만나기 위해 성남에서 광주 망월동 묘지까지 걸어갔었습니다. 다친 다리를 싸매고 절면서 이를 악물고 걸었습니다. 그리고 서른셋에 처형당했던 예수보다 열세 살이나 어린 스무 살에 십자가를 지고 불의한 역사에 맞섰던 친구의 무덤 앞에서 눈물로 다짐했었습니다. 그래서 성남에 내려가 도시빈민선교에 참여했습니다. 탄압받는 노동자들과 함께하고자 공장을 다니다 해고됐고 산자교회를 창립하고, 노동상담소 '희망의 전화'를 세웠습니다. 이와 함께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을 하던 중에 외국인노동자와 중국동포의 산재 피해를 돕게 되면서 도시빈민보다, 한국 노동자보다 더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이주민들을 돕는 것이 예수 십자가의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땅에서 울고 있는 이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소리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눈물을 닦아주며 손잡으며 살아온 세월이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서 20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십자가 앞에서 여전히 빚쟁이입니다. 친구 류동운과의 약속을 아직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가 이주민과 다문화가정을 도왔다는 공로로 여럿의 상을 받았지만 이것은 온전히 제 몫이 아닙니다. 지난 2010년 포스코청암상 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받게 된 상금 전액(2억원)을 지구촌학교 건립기금에 내 놓은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동안 상을 받으면서 갖게 된 기쁨은 30년 넘도록 한 눈을 팔지 않고 살아온 저의 외길을 인정하며 격려해준 것입니다. 물론 저의 어깨 위엔 무거운 짐과 책임이 더해졌습니다. 외국인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이 여전히 힘들기 때문입니다. 
제20회 한신상을 지난 12일(금) 수상했습니다. 1993년에 제정된 한신상은 한신대의 민주화 전통과 그 뜻에 부합한 인물 중 사회발전에 공헌한 인물들에게 상을 주고 있는데 역대 수상자들은 제가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장준하 선생님(1회), 문익환 목사님(3회), 김대중 전 대통령님(17회) 등이 한신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면서 역사 발전을 이루며 받은 상을 제가 받게 되니 영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끄러웠습니다. 수상식이 끝난 뒤에 한신대 교정에 세워진 류동운 열사의 추모비를 찾아가 꽃다발을 바치며 친구와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지금의 저를 보았습니다. 아울러, 박흥식 전도사의 조그만 추모비도 찾았습니다. 박 전도사는 외국인노동자와 함께하는 1999년 여름수련회에서 익사 직전인 고등학생들을 구조하다 파도에 휩쓸려 숨진 분입니다. 후배이자 가난한 신학생이었던 박전도사는 예수의 진정한 제자였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온몸으로 따랐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정의로운 역사를 위해,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친 두 사람의 추모비 앞에서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다시 새기며 또 다짐했습니다. 제가 받았던 상들들 저의 것이 아닙니다. 친구 류동운과 박흥식 전도사, 이름도 없이 수고하는 동역자들의 것입니다. 상을 받는 것은 새롭게 다짐하며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자인 외국인노동자들과 다문화가정 편에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문화 희망세상을 만드는 일에 온 몸과 마음을 바치자! 이렇게 다짐하면서 저의 채권자이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역사의 빚쟁이인 저를, 버려진 돌처럼 보잘 것 없는 저를 세워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저의 모든 영광을 바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