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다문화 대안 초등학교 '1회' 졸업생들
피부색 다르지만, 한국말·문화 능숙한 '코리안'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제가 입을 열면 다들 깜짝 놀라요. 외국인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한다고요. 하지만 저, 한국인 맞습니다."
15일 열린 서울 구로구 오류동 '지구촌학교'의 1회
졸업식. 학교 4층 강당 앞쪽 단상에 오른 황용연(14)군이 상기된 표정으로 졸업 소감을 전했다. '지구촌학교'는 지난 2011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다문화 대안 초등학교다. 황군은 "일반 중학교로 진학하게 돼 걱정 반 설레임 반"이라면서 "주위의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계속 노력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영화 '
마이 리틀 히어로'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얻게 된 황군은 다문화 사회에선 이미 인기스타다. 가나 출신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수 년 전 차례대로 부모를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황군은 한국인이 아니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황군은 "제 피부색을 보며 사람들이 수근거릴 때마다 힘든 적도 많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좋은 친구들과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어 행복해요"며 어른스럽게 답했다. 영화배우가 꿈이라는 그의 롤모델은 헐리우드 배우 윌 스미스다. "배우가 꿈이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구김살을 찾기란 어려웠다.
또렷한 이목구비로 시선을 끄는 전미나(14)양은 아직 한국말이 익숙치 않다. "친구들, 선생님들과 헤어지니까 조금은 슬프다"며 수줍게 웃고 만다.
피아니스트가 꿈인 전양은
필리핀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날 졸업식에 함께 참석한 전양의 어머니는 "지난 98년에 결혼해 세 자녀를 낳았다. 한국에 온지는 2년이 채 안됐지만 아이가 적응을 잘하고 이번에 졸업도 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케일렙군의 소감도 인상적이다. 선교사로 활동 중인 영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의 축구선수 루니를 좋아하는 내성적인 소년이다.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점잖은 성격을 지녔다. 그는 "2007년 부모님과 함께 영국을 방문했던 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며 "그곳에선 아무도 내 외모에 주목하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고 털어놨다.
안우성·손건성군과 이지혜양은 중국 출신의 이주민 가정 자녀들이다. 개구쟁이 같은 외모로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우성군, "한국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하는 건성군은 인기 아이돌그룹에 열광하는 평범한 소년들이다. 2년 전 한국에 오게 된 지혜양 역시 "걸그룹 '
에이핑크'를 좋아한다"며 해맑게 웃었다.
아이들을 지켜 보던 이윤주 담임교사는 "참 유쾌한 아이들"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구촌학교는 이주민지원 전문기관인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 대표
김해성 목사가 지난 2011년 3월 설립해 같은해 11월 국내 최초 정규 초등 대안학교로 인가받았다. 현재 중국, 필리핀,
미얀마, 일본, 태국, 과테말라, 우즈벡, 미국 등 16개국 출신 98명이 재학 중이다.
박세진 교장은 이날 졸업생 및 내빈들을 향해 "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의 어려운 경제사정이나 학교부적응, 학습부진 문제로 학업을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이번 졸업식이 첫 시금석이 돼 이들이 한국 사회의 전문 인력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학교 설립자인 김해성 목사는 축사를 통해 "이들 6명은 평범한 졸업생이 아니라 왕따와 차별 등 갖가지 역경을 이겨낸 영웅들"이라고 평한 뒤, 졸업생들에게 "다문화 희망세상을 일구는 주역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 가정 자녀수는 지난 2010년 12만명에서 해마다 2만명씩 늘고 있다. 숫자는 증가한 반면 이들의 중학교 미진학율은 전체의 59.2%, 고등학교 미진학율은 81.1%에 달한다. 또 학업이 중단된 후에도 별다른 지원도 못받은 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지구촌사랑나눔의 이원재 후원팀장은 "현재 150만에 육박하는 다문화 가정의 교육 및 문화적응 문제를 계속 방치하면 우리 사회의 불안 요인이 그만큼 확대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들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지원 및 다문화 출신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인서 기자 en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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