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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조용기 목사 설교] 부활절을 맞이하여2024-11-15 01:53
작성자 Level 10

조용기 목사 설교] 부활절을 맞이하여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8)

<서론>
저는 “부활절을 맞이하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는데 찬송부터 먼저 부르십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보면 예수님 이외에 어떤 성현 군자도 죽은 지 사흘 만에 무덤을 헤치고 부활해 나온 인물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일반적인 종교 창설자와는 전혀 다른 것은 그가 진리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리였습니다. 어떻게 아느냐. 주님이 거짓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어떻게 아느냐. 거짓말쟁이가 부활한 법이 없습니다. 죽었다가 부활한다는 것은 참말만 하고 참속에 살고 그 자신이 참일 때만 일어나지 거짓말도 하고 속이기도 하고 과장도 하고 그런 사람이 부활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산 일생이 정말로 진실이라고 진리였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증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본론>
1. 왜 구주가 필요한가?

사람들은 왜 우리가 구주가 필요합니까? 그냥 먹고 살다가 가면 그뿐이지 왜 구주가 필요합니까? 그런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주가 필요한 것은 우리 속에서 속사람이 부르짖는 음성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죽지 아니하십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 속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습니다. 영원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처럼 영원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왜, 그것을 알 수 있냐 하면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하나님 없다고 하는 사람이나 관계없이 자기 속에 들어가 보면 자기 의지를 초월해서 죽기 싫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사람은 영원할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이 전혀 없으면 우리 한국에서는 부모 제삿날에 엎드려 절할 필요 없습니다. 또, 묘지를 찾아가서 벌초도 하고 절도 하는데 완전히 형식과 의식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그 속에 무엇인지 어디에 부모님이 살아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꼭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기 때문에 육체는 죽어도 영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 죽고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을 기뻐하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천국영생을 얻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 말입니다. 차라리 없어져버리면 괜찮겠는데 없어지지 아니하고 지옥에 가니까 그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지옥에 들어가서 고생할 것 생각하면 태어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육체가 죽어도 본체인 영적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죄로 부패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은 존재를 어찌하든지 구원해야 되겠습니다. 영원히 죽는 자리에서 건져낼 뿐 아니라 아담의 범죄로 우리가 조상들로 물려받은 저주가 죄, 허물, 질병, 저주, 절망과 죽음의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것조차도 벗어놓고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저주가 우리 생활을 붙잡고 있으므로 우리가 고생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자손은 모두다 원죄의 종으로 구원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구원 못해요. 왜냐하면 어머니 배속에 생겨날 때부터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인 부모를 통해서 죄를 가슴에 안고 태어난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데 남을 어떻게 건져 내는 것입니까? 내가 죄인인데 다른 사람을 건져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이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혈통을 받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 되었는데 마리아를 통해서 아버지 없이 태어났습니다.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기 때문에 아담의 유전을 받지 않았습니다. 유전 죄가 예수님께는 없습니다. 사람 형상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은 타락한 아담의 유전이 전혀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죄도 없고 죄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병도 없고 저주도 없고 죽음도 없고 그는 완전한 새로운 종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아담의 모든 유전저주를 청산하고 새로운 인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어떻게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는지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5장 8절로 9절에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예수 안에서는 아담의 유전이 다 청산되어 버리고 새사람으로 영원히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도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나님의 죄 없는 어린양이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고난을 통해서 다 청산하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유대인이나 이방인 할 것 없이 온 세상에 사람의 죄를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청산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을 지은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웬만한 일에는 세상도 교회 못지 않거나 교회보다 더 잘한다. 집을 지어 주는 것하고 가난한 사람들 먹여 주는 것, 아픈 사람들 고쳐 주고 위로해 주는 것 이런 것은 교회가 안 해도 안 믿는 사회에서도 그런 자선사업을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딱 있습니다. 세상은 결코 은혜를 베풀 수가 없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죽은 자를 값없이 대신 주고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역사가 은혜인데 세상은 다른 것 다 해줘도 은혜는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믿음 하나만 가지고 모든 것을 은혜로 선물로 구원을 받았는데 이것은 세상은 절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필립 얀시도 “은혜는 기독교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요, 복수보다 강하고 인종 차별보다 강하고 증오보다 강한 힘을 발휘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은혜입니다.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죄 없는 자가 죄 있는 자의 죄를 담당하시고 저주받지 않은 자가 저주 받은 자의 저주의 짐을 짊어지시고 죽지 않는 자가 죽는 사람의 버림받은 상태를 받아서 대신 갚아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많습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는 것은 인간들이 지은 과장이요,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단지 기절했는데 무덤 서늘한 곳에 눕혀놓으니 기절했다가 깨어나서 부활했다고 그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잡혀서 대못이 박혀서 6시간 동안 매달려 있었는데 거기에서 기절해서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왔다. 그 말이 왜 거짓말이냐면 예수님이 죽었으니까 시체를 달라고 아리마대 요셉이 총독 빌라도에게 요구하니까 빌라도가 군인을 불러서 그렇게 빨리 죽었냐. 확실히 죽었는지 보고서 주라. 그래서 군인이 와서 다른 죄수 두 사람은 다리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보니까 이미 세상을 떴기에 창으로 옆구리를 콱 찔렀습니다. 그런데 그 옆구리에서 물이 나오고 피가 나왔습니다.

여러분 그냥 돌아가셨으면 심장이 뚫어지면 심장에는 물이 없습니다. 피가 그대로 흘러나오게 되는데 물이 나오고 피가 나왔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물과 피를 쏟았다. 여러분의 피를 뽑아 가지고서 병에 담아놓고 시간이 걸리면 피는 가라앉고 물은 위에 뜹니다. 피는 여러분이 마시는 물에 섞여서 우리 온몸을 생기를 주고 있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그 심장이 갈라졌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자식들이 말을 안 듣고 속상하게 하면 내 심장이 터진다. 터져! 그런 말 저도 우리 어머님에게 가끔 들었습니다. 내가 어머니에게 애를 먹이니까 용기야, 좀 속상하지 말게 해라. 너가 안 해도 나 견딜 수가 없다. 내 심장이 터진다 너 때문에... 그러면 내가 속으로 안에 있는 심장이 왜 터지노? 몹시 괴로우면 심장이 터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실제로 심장이 터졌어요. 그래서 심방에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심방의 물주머니에 피가 고여서 물이 위로 뜨고 피는 가라앉고 하는데 창으로 찌르니까 물이 쏟아져 나오고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과학적으로 따져봐도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확실한데 그 예수님이 기절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기절할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이 마귀의 사주를 받아서 그런 거짓말을 퍼뜨려서 예수님이 우리 속죄를 이루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5장 43절로 45절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고 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가고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말은 그 다음 또 다른 원수들이 지은 말인 것입니다. 로마의 막강한 군인들이 파견되어서 예수님의 묘지 막아놓은 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제자들이 강제로 나가서 그 돌을 옮기고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갔다면 한번 군인들과 싸워야 될 것이요 적어도 몇 사람의 제자가 죽었던지 체포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막강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무덤을 오합지졸인 제자들이 가서 시체를 훔쳤겠습니까? 살아온 예수님도 버리고 간 놈들이 죽은 예수를 훔쳐내오기 위해서 목숨 내놓을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 빌라도의 뜰에서 심판 받을 때 다 도망갔지요.

베드로는 수제자인데 손사레를 하면서 나는 그 분을 모른다.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고 부인을 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죽은 예수의 시체를 훔쳐갈 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과 관계된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 예수님이 부활했으니까 자는 틈에 제자들이 와서 훔쳐갔다고 그렇게 대답을 하고 총독이 물어보면 우리가 말을 잘해서 무사하게 만들어 주겠다. 뇌물을 써서 예수님은 부활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훔쳐갔다. 그렇게 말하도록 했었습니다.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마 28:12~15)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무덤에서 시원하니까 살아났다. 그 다음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 그런 말을 해도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고 귀로 듣고 냄새 맡고 만져보고 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영혼 속에 말씀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을 말씀을 들었을 때 성령으로 마음에 감동을 주어서 머리가 무엇이라고 하든지 마음이 믿는데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의심이 안 생기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그러나 의심보다 더 강한 믿음이 마음속에 점령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 우리가 잘나서 믿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먼저 여러분을 택하여서 불러 주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 같은 촌놈을 불러서 예수를 믿도록 역사하니까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서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서 천국 백성이 된 사람은 안 믿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보고 믿지 말라고 해도 안 믿을 수 없어요. 왜냐하면 예수 믿어야 살겠지. 안 믿고는 못삽니다. 저는 기도할 때 늘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내가 일생에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예수를 구주로 믿은 것입니다. 지금 믿지 말라고 하면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를 안 믿으면 무엇 때문에 삽니까? 삶의 의미와 가치도 없고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완전히 노숙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은 무슨 눈으로 본 증거가 있어서 믿는 것보다도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고 믿게 된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

예수님이 부활하신 증거는 굉장히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에 기간 동안 자신이 죽었다가 3일 만에 살아날 것을 여러 번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1절에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이미 죽기 전에 내가 죽어서 사흘 동안 무덤에 들어갔다가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6절로 7절에도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천사가 그와 같이 말해 주었습니다. 새벽에 무덤을 찾아간 여자들에게 증언한 주의 천사의 말을 읽어 보십시다.

마태복음 28장 1절로 10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지냈다가 사흘 만에 돌을 옮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때 그 여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기름을 뿌리러 갔다가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누우신 자리를 보라고 해서 보고 예수님이 부활한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뛰어가다가 예수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평안하냐. 너무 놀라고 기뻐서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하니까 뒤로 물러섰습니다. 아직 손대지 마라. 나는 아버지에게 나가지 못했으니 손을 대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여제자 한 사람이 무덤 가에서 울고 있으니까 뒤에 누가 와 있거든요. 산지기인줄 알고 우리 주님의 시체를 어디에 갖다 놓았는지 내게 알려 주십시오 내가 모시고 갈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여, 그런데 돌아보니까 예수였습니다. 그래서 이 여제자들이 먼저 예수님을 보았고 그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수없이 나타났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어떤 사람이 같이 걸어가자고 따라오면서 여러 가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주막에 들어가서 요기를 하려고 함께 떡을 두고 기도를 하는데 눈을 떠 보니까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엠마오로 나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2절에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그 다음 또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예수님의 열 제자들이 모였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도마는 없었습니다. 도마가 돌아오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부 흥분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보았다 하니까 참 여자들이 예수 보았다고 떠들으니까 너희들도 그렇게 덩달아서 예수 부활하셨다고 야단인데 나는 예수님이 정말 부활했었으면 그 옆구리를 들춰서 내 손가락으로 창자국에 넣어보고 그를 만져보고 그래서 증거가 확실하면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믿지 자네들처럼 그렇게 흥분해서 예수님 나타났다고 야단법석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는데 여드레가 지나고 난 다음에 또 제자들이 함께 모였는데 그때는 도마가 자기 혼자 어디 가지 않고 함께 있었어요. 아마 전에는 다른데 취직하러 갔는지 모르겠어요. 예수님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니까 먹고 살아야지. 그래서 안 왔는데 그때는 제자들과 같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다 놀라서 환영을 하고 고함을 치는데 도마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예수님이 도마를 보고 이리 오너라. 내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만져 보아라. 옆구리에 손 한번 넣어 보아라. 그러니까 도마가 그 자리에 엎드려서 경배를 하고 주여,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주님이여, 그래서 예수님이 네가 보았으니 나를 믿느냐? 안보고 믿으면 더 복이 있는데... 그런 의심이 많은 도마도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만지고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을 확증한 것입니다. 갈릴리의 지시하신 산에 나가서 예수님께서 제자들 만난 사실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여 주시고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오백여명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께서 나타나 보이시고 승천하셨는데 오백명이 다 미쳤다고 볼 수 없지 않습니까? 혹 미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 미쳤으면 499명은 안 미쳤을 것 아니에요? 100명이 미쳤으면 400명은 안 미쳤다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다 미쳤다고 어떻게 합니까? 500명 전체가 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다고 하는데 누가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확실히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세상에서 계시면서 여기에 번쩍 저기에 번쩍 하시면서 당신이 나타나셨고 나중에 제자들을 잡아 죽이려고 하던 바울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서 구원을 해주셨고 제자 중에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로 8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바울 선생은 자기를 낮춰서 말했습니다만 바울 선생에게도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4. 왜 부활하셔야만 했나?

그러면 우리가 왜 예수님이 부활해야 되고 부활했다고 주장을 하느냐.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부활 안했으면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과 설교하는 나는 전부다 병시, 바보입니다. 우리의 믿은 것이 다 거짓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속죄사역을 다 이뤘다는 증거로 죽음이란 감옥에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한국 이조시대에 나라돈 천냥을 먹으면 감옥에 들어갑니다. 감옥에 들어가서 국가가 정한 날에 돈을 갚지 못하면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공무원이 나랏돈 천냥을 먹고 붙잡혀서 감옥에 들어갔는데 날짜가 지나고 난 다음 길거리에 유유히 걸어다니거든. 저 사람 천냥을 먹고 감옥에 갇혔는데 어떻게 걸어다니느냐. 옆에 사람이 야 이놈아, 천냥을 다 갚았기 때문에 걸어다니지. 안 갚았으면 목 날라갔다 벌써. 그러니 그 사람이 감옥에서 나와서 걸어다니는 것이 천냥을 갚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음부에 들어가셨을 때는 우리 죄, 우리 허물, 우리 병, 우리 저주, 우리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음부에 들어갔기 때문에 갚지 못하면 못나옵니다. 마귀가 지키고 있는 그 지옥에 주님이 우리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과 죽음을 걸머지고 들어갔는데 갚아야 나오지 안 갚고는 절대로 못나옵니다. 그런데 사흘 만에 예수님이 무덤 문을 헤치고 마귀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나온 것은 여러분 우리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과 죽음을 다 청산해 버렸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이 살아 나왔다는 것은 여러분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증거가 되고 여러분의 불의가 용서받았고 여러분의 병도 예수님이 이미 다 청산해 버렸고 저주와 가난과 낭패와 실망도 청산하고 죽음조차도 다 멸해버리고 주님께서 나왔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한 예수님을 확실히 깨달으면 여러분 굉장히 용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기록된 말씀처럼“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제는 죄의 멍에, 허물의 멍에, 질병의 멍에, 저주와 가난의 멍에, 낭패와 실망의 멍에, 지옥과 죽음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다 갚아버린 것입니다. 청산을 해버렸어요. 우리는 자유인이 된 것인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고 늘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큰 은혜에 감격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여러분이 옛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와계신 것도 되는 것입니다. 옛날 아담의 후예가 아니라 새로운 인류조상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으로써 그리스도의 자유를 받아서 살아야 되기 때문에 교회에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옛날의 여러분이 아닙니다. 믿기 전의 여러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유인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 사준 의로운 훈장을 달고 있고 거룩한 훈장을 받고 성령을 받았고 병은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면 물러가야 되고 저주와 가난도 여러분에게 떠나가 만사형통하게 되어야 하고 여러분 부활, 영생, 천국의 백성이 되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부활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은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이것을 다 갚아버렸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안그러면 마귀가 와서 언제 너가 큰소리 하느냐. 너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과 죽음을 갚은 줄 네가 어떻게 아느냐. 우리가 말 못합니다. 그런데 무덤에 들어간 예수님이 다 청산했기 때문에 부활했지 않느냐. 잔소리하지 말아라. 그러면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가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는 의롭게 된 것입니다. 왜, 죄의 값을 갚아 주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못 갚았으나 예수님이 갚았기 때문에... 갚은 증거로써 감옥에서 나왔으므로 우리가 의롭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6장 9절에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주님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났기 때문에 다시 죽음이 예수님을 붙잡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살아나셨네. 누구를 위해서. 여러분을 위해서 살아나신 것입니다. 사망의 세력인 마귀의 무장을 해제하셨다는 증거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마귀는 사망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들어갔을 때 육신의 무덤뿐 아니라 영적인 감옥인 음부에 주님이 내려가셨는데 그 예수님이 부활 못하게 하려고 마귀는 있는 힘을 다해서 막았습니다만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보혈의 능력으로 다 청산하시고 마귀의 진을 훼파하시고 무장을 해제하시고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마귀는 무장해제가 되었습니다. 지금 큰소리해도 마귀의 무기는 힘이 없어요. 무장해제 되었어요. 여러분이 진리를 알고 담대히 서서 마귀를 대적하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는 여러분에게 와서 생활을 어지럽게 만들고 억압하고 우울하게 만들고 탄식하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들려고 애를 쓰는데 예수님 보혈로 무장한 여러분에게는 감당을 못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4절로 58절 보면“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사망이 다가오면 사망아 너희가 어디 있느냐.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네가 무슨 큰소리하는 것이냐.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은 내 사망을 당신의 사망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려 청산하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사 영생을 내게 주었으니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우리를 대적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우리 때문에 한 것이므로 예수 공로는 우리의 공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받은 형벌이 뭡니까? 죄를 지었고 허물진 인생이 되었고 영육 간에 병들게 되었고 저주를 받았고 음부를 다 매울 수 없을 만큼 꽉 들어차게 된 인생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형벌인 죄와 허물, 질병, 저주, 음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깨끗이 청산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우리는 두 세계를 사는 것입니다. 옛날 아담의 후예로서 살 때에는 우리는 우리의 죄가 점령하고 있었고 허물진 인생이요 늘 병들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그리고 죽고 마는 것입니다. 누가 그것을 물리쳐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은 우리들은 이제 죄가 용서받고 죄가 사함 받고 질병을 고침 받고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음부를 멸하고 영생복락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로 22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아담 안에서 내가 죽었으나 예수님 안에서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은 우리와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생명이 우리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므로 이 부활을 통해서 우리는 놀라운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용서와 의, 거룩함과 성령충만, 건강과 치료, 그리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 부활, 영생 천국이 당당히 우리 것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환경을 바라보고 따라가지 마십시오.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가. 그 말씀을 깨닫고 알고 믿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에 서서 나가면 여러분은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유는 구약성경에 예수님 오시기 6백년 전에 이미 벌써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고난당하고 죽었다가 부활할 것을 예언해 놓았는데 그런 예언이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이 증거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4절로 15절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그리스도가 부활 안하셨으면 우리는 완전히 사기꾼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전도하는 것은 우리가 사기꾼이 되는 것이고 우리말을 믿고 믿은 사람도 헛것이 되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는 것이 거짓말이 되었으니 낭패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2절로 3절에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0일 동안, 한 달 열흘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 속에 계시면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지금은 왜 안 나타나시느냐. 지금은 나타나신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여러분 안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고 여러분이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포도나무요 우리는 거기에 붙은 가지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천상 포도나무에 여러분은 지상 포도나무에 가지로써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나라의 진액을 받아들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그 진액을 받아서 이 땅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용서받은 의를 진액으로 받고 거룩한 성령을 진액으로 받고 건강을 진액으로 받고 치료와 축복을 진액으로 받고 영생축복을 진액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천상의 은총을 받아서 지상에서 천당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진리를 알고 깨달아서 믿고 꿈꾸고 입으로 시인하고 기도하면 다 우리 생활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복구해 주신 은혜는 상상할 수 없이 큽니다. 여러분 지금 사는 여러분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하나님이 섭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고 여러분 하나님이 되시고 여러분을 붙들어 주시고 여러분을 참으로 도와주시고 여러분을 인도해 주시는 주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주시고 새로운 하늘나라 백성이 되게 해주셔서 신바람나게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생활이 바로 신바람나는 생활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말씀도 듣고 기도도 하고 찬양도 부르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이 부활하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의 노예요, 사탄의 종이요, 죽음의 종이요, 절대절망 가운데 허덕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를 확실히 알고 죄의 삯인 죽음, 저주, 병, 허물 등에서 해방을 취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살아나셔서 주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선이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은 새사람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 안에서 진실로 새사람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와서 계시고 이 질그릇 속에 보배를 모시고 있으므로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유보다 크시고 강하시며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계시므로 여러분이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님께 의지하면 주님의 생명이 나타나서 이기는 것입니다. 걱정거리가 생겨도 그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핍박해도 버림받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에 죽은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 알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부활했다는 것을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예수 생명이 여러분 생명이 되어서 예수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죽음을 항상 몸에 걸머짐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여러분에게 나타나서 여러분은 차원이 다르고 차원이 높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넘치는 사랑, 넘치는 믿음, 넘치는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개인을 위해서만 살 것이 아니라 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주변에 하늘나라가 임하도록 증거해 주고 기도해주는 용사들이 된 것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예수 이름으로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금도 가까이 계시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거운 짐, 문제, 고난스러운 일 많지요. 이런 것을 예수님께 내어 맡기면 깡그리 예수님이 맡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기도해서 맡기고 난 다음 여러분이 주님이여 내 일을 주님께 다 맡겼는데 이제 나는 뭐할까요? 그러면 믿고 쉬어라. 아이구 걱정이 되는데요? 내게 다 맡겼으니 네가 할 일은 없지 않느냐. 너 할 일을 내게 맡겼으니 내가 다 책임질테니 너는 쉬어라. 그래도 나는 무슨 일을 좀 해야 되겠는데요. 할 일 없다니까? 내가 다 맡았다니까. 왜 잔소리냐. 그냥 믿고 기다려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이 골머리가 아프도록 괴로움을 갖다주는 우리 자매님들도 계시지요? 그 자매님은 하나님 우리 남편이 나의 골을 때립니다. 아주 괴롭습니다. 주님께 내어맡기니 주님이 돌보아 주시옵소서. 그러면 주님께서 오냐. 내가 맡아주마. 진짜로 맡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뭐할까요? 내가 맡았으니 날보고 박수나 쳐주고 감사나 하고 쉬어라. 내가 이 말을 왜 하느냐면 바로 몇 주 전에 우리 자매님이 제게 와서 신앙상담을 하는데 아무래도 그만 살았으면 좋겠다. 50이 넘었는데 아주 남편이 마음에 고통을 주어서 견딜 수가 없다. 이제는 더 살 수가 없으니까 남편하고 같이 안 살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남편 돌이키려고 트라이를 많이 해보았습니까? 밥도 지어주고 빨래도 해주고 위로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었는데 자기만 알고 나는 완전히 종으로 생각하는데 이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 말 말구요.

자매님 예수 믿지요? 예 믿습니다. 이럴 때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남편을 맡기십시오. 전에도 맡겼는데요. 그러면 왜 내게 와서 남편 이야기를 합니까? 안 맡겼기 때문에 예수님께 맡긴 것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또 맡기려고 그러지 않습니까? 맡겼으면 주님이 책임졌기 때문에 자매님은 할 일이 없습니다. 할 일이 없어요. 주님께 우리 남편 내가 변화시키는데 예수님 좀 도와드릴까요? 이렇게 말씀 해 보십시오. 예수님 뭐라고 말합니까? 너 나를 누구로 아느냐? 맡겼으면 맡겼지 나를 도와주다니? 나는 맡은 것은 다른 사람과 일하지 않는다. 가져가려면 다 가지고 가라. 그렇게 말할 것이니 맡겨라. 그런데 자매님이 며칠 전에 내게 왔어요. 여태까지 살면서 남편이 그렇게 변화된 것은 알 수가 없다고... 아마 오늘 이 예배에 남편도 왔을 것입니다. 그 다음 남편도 내게 와서 말을 했습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을 깊이 뉘우치고 요사이 굉장히 마음이 달라지고 회개하고 정말 우리 집사람이 나에게 잘해주고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회개하는데 나도 교회 나가겠습니다. 나도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역사하니까 간단히 되잖아요. 내가 맡아서 하니까 어렵지요. 금시 내가 설교하는데 누가 내 남편 이야기만 자꾸 하냐고 하는데 가만히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더 나쁜 일을 많이 하니까 그렇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맡기를 원하는데 어느 정도 맡기를 원하느냐면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6시간 동안 매달리기까지도 책임을 지시며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남기고 세상을 떴는데 내가 너희 일을 다 이루었다. 그러니 예수님이 나의 일을 다 이루었으니 내가 할 일은 없지 않습니까? 영원하신 예수님이 영원히 우리 일을 맡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이제는 여러분과 함께 살면서 여러분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책임지시므로 평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예 주님께 본때 있게 맡기십시오. 그리고 다시 수고가 오면 예수 이름으로 다시 아뢰십시오. 내 마음에 간직하지 말고 또 아뢰고 또 아뢰고 자꾸 주님께 아뢰 버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맡아 준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할 일이 없으니까 감사하십시오. 참으로 여러분,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안식을 마음속에 가지고 주님의 안식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생활이란 놀라운 생활입니다. 그렇게 안식을 가지고 살게 되면 예수 믿는 재미가 가슴에 가득 차게 되고 남에게 전도하더라도 크게 소리치고 전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학문이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논리가 아닙니다. 상상적으로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사는 새로운 삶인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예수님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은 유한한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의 품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끌어안을 수가 있고 한사람부터 억조 탄생을 다 마음에 끌어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삽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의지하고 삽니다. 예수님이 베풀어주시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갖고 삽니다.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높고 희망찬 승리의 꿈을 가지십시오.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으십시오. 강하고 담대하게 말하십시오. 좋은 일이 여러분에게 이제부터 일어납니다.

/ 2013. 3. 31. 부활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