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교육에 짓눌린 나, 실험 대상이 돼 머리 싸매는 현실이 답답 ㆍ(4) 서울 ㄹ중학교 1학년 교사
“또 진로야?”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 시범학교로 지정된 우리 학교에서는 이 말이 자주 터진다. 아직 취지도 제대로 설명되거나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도 1학년 학생들에게 진로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은 학교의 숙제로 돼 있다. 온갖 직업의 종류만 알려준다고 아이들이 적성에 맞는 진로를 잘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학교는 실적 위주로 행사 수만 늘리고 아이들은 매일같이 “진로” “진로”라는 바윗덩어리에 눌려 지내고 있다.
결국 우리 반 학생 한 명은 전학을 갔다. 불안에 떠는 거다. 교육청은 중간고사를 없애는 대신 수행평가에 진로 영역을 접목시키라고 했다. 하지만 실효성도 의심스러운 진로교육을 하면서 기말고사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 되자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걱정은 커졌다. 교육청은 “너희는 중간고사 안 봐서 행복하지? 이게 행복교육이야”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고교 입시 걱정에서 벗어나 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얼마 전 교사회의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중간에 평가를 해서 기말고사 범위를 줄이라’는 주문사항도 떨어져 더 우스운 상황이 됐다. 중간고사를 없앤다면서 비공식적으로 쪽지시험을 보고 학기말 성적에도 반영한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뒤죽박죽된 행복교육이고, 진로탐색인지…. 많은 교사들의 넋두리처럼 “실험 대상이 돼 머리 싸매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 다양한 진로탐색 수업하고 싶어도 기존 업무에 치여 고민할 시간 없어 중간고사 폐지 뒤 기말고사 부담에 우리 반 1명은 전학… 행복교육 맞나
시범학교로 지정되면 담임교사들은 죽어난다. 충분히 연구된 콘텐츠가 제시되는 게 아니라 시범학교를 일단 지정해놓고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연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만 충분하다면 다양한 수업 방식이나 행사도 짜내보고 싶지만 나도, 교사회의에서 부딪치는 동료 교사들도 그럴 시간이 없다. 기존 업무도 많기 때문이다. 시간도 확보해주지 않고 A4 용지 3~4장의 정책 평가·의견서를 제출하라고 갑자기 지시가 내려오면 화부터 난다. 교육감이 교장에게, 교장이 교사에게 말 한마디로 새 정책이 만들어질 거라고 너무 쉽게 지시하는 것 같다. 그사이 학교 현장만 여러가지 실험이 몰리는 ‘깔때기’가 돼 힘들어진다.
중간고사 기간에 열린 진로콘서트도 황당했다. 프로그램이 따로 없다보니 중구난방식이다. 컨설팅업체 관계자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직업에 대해 소개하고, “이런 직업을 가지면 연봉이 몇 천만원입니다”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이제 14살인 아이들은 성인이 된 다음에나 필요한 포트폴리오 작성법도 배웠다. 아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꿈을 찾고 발현할지 알아보는 게 아니라 단순히 취업 목적으로 진로교육이 이뤄지는 거다. 기업들의 참여가 미진한 상태에서 직업체험을 하려고 하니 아이들은 몇 가지 특정 직종만 접하게 된다. 재밌었냐고 물었을 때 손드는 아이는 3~4명뿐. 소감문을 쓰라고 해도 ‘유익했다’는 형식적 한마디로 끝이다. 진로콘서트 이틀 뒤 바로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하는 식의 과도한 행사 진행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피로감만 준다. 그 프로그램을 위해서 아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체험학습 안내를 하고, 학부모 동의서도 돌려야 하고…. 한꺼번에 5장의 가정통신문을 보낸 적도 있다.
봉사활동과 진로탐색이 합쳐지니 기형적인 내용도 나온다. 학교에서 현충원에 참배하면서 묘지의 잡초를 제거하는 봉사활동을 해왔는데 여기에 진로를 접목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묘비에 쓰여 있는 군인의 이름과 직업을 알아보자’는 식이다. 그게 아이들의 진로탐색에 얼마나 도움 될지 알 수 없는 기계적인 진로교육이 되고 있다. 개학하고 벌써 3개월째, 거의 진로에 미쳤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었다.
교사의 위기는 두 갈래로 온다고 생각한다. 먼저 관리자로부터 오는 위기가 있다. 위에서는 계속 업무를 시키기 바쁘고 아래에서는 허덕대면서 해내기 바쁜 구조다. 학교가 하나의 인간공동체라는 느낌은 사라지고 업무를 해치우는 관계가 돼버렸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은 관계, 서로 너무 힘드니까 어떡하면 일을 덜할까만 고민하게 되는 관계가 됐다. ‘교과서 홀릭’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나는 항상 가방 안에 교과서를 넣고 다닌다. 주말이나 이동할 때도 짬이 날 때면 교과서를 꺼내 본다. 남편이 이유를 묻는다. 나로선 간단하다. 공식 업무시간에는 교과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교수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할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루에 4~5시간씩 수업하고 가끔 빈 시간이 있을 때면 업무처리를 해야 한다. 너무 힘들 때는 휴게실 가서 시체처럼 누워 있기도 한다. 너무 바빠서 5월인 지금까지도 반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모두 상담하지 못했다. 대다수 아이들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교사의 위기를 부르는 다른 하나는 아이들로부터 온다. 나부터도 학생으로부터 “말 시키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아이를 지도하다 너무 힘이 들어 ‘이래서 교사를 그만두는구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교사들이 아이들 보기가 무섭다고 한다. 웬만하면 교칙을 위반해도 무시하고 싶어지고, 건드리고 싶지 않은 거다. 교사들도 사람인데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다른 아이들 앞에서 교사가 그렇게 당했을 경우에는 교사라는 권위에 엄청나게 상처를 받고, 다른 아이들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까봐 교사들은 굉장히 떨고 있다.
교사와 충돌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가정환경이 좋지 않다. 가정환경이 좋아도 학교에서 자기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성적이 좋아야 하는데 그게 안될 경우 사라진 자기 존재감을 보여주려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스트레스를 폭력적 성향으로 드러내면서 폭력 대상이 주변 친구에서 교사들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한 반을 보면 학벌 위주 사회를 대처하는 모습이 극과 극으로 나눠져 있다. 매사를 성적으로 사고하는 아이와 성적에 전혀 무관심한 아이로 구분된다. 공부하는 아이도, 공부를 안 하는 아이도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마찬가지다. 공부를 하는 아이는 가장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불안하고, 공부를 안 하는 아이는 대안을 찾지 못해 불안하다. 친구의 잘못을 감싸는 게 아니라 일러바치는 쪽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늘어난 것도 이런 경쟁사회의 한 단면인 것 같다.
교사들은 행복하지 않다. 불행하다고 스스로 얘기한다. 학교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맡은 일만 빨리 하고 학교를 뜨고 싶어한다. 교사들은 서로 만나지도 않고 얘기도 나누지 않는다. 행복하지 않은 교사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어떨까. 항상 피곤해하고 귀찮아하는 교사의 모습을 보는 아이들은 어떨까. 자유를 주기보다 통제의 틀로 교육하는 학교와 때로 그렇게 변한 스스로를 느끼지도 못하는 교사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들까. 결코 긍정적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교사는 행복해져야 한다. 그것을 다시 절감하는 스승의 날이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