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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교사가 말하는 나·학교·아이들(2)- (펌글)2024-11-18 04:46
작성자 Level 10

[교사가 말하는 나·학교·아이들]업무에 치여 ‘행정 직원’ 같은 나, 관록 안 붙고 열정도 사라져
 

ㆍ(2) 서울 강북 ㄴ초등교 교사

9년째 초등학교 교사를 해온 나는 때때로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3학년 빈 교실에 앉아 있을 때면 ‘이 교실에 갇혀버린 파편화된 유리조각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9년 전 교단에 처음 설 때 교사를 계속하다보면 관록과 열정이 붙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노하우는 조금 생겼지만 관록은 붙지 않았고, 열정은 사라졌다. 딱 주어진 것, 꼭 해야 하는 일만 한다. 그 이상은 할 시간도 없고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현재 나에게 가장 큰 감정은 ‘무력감’이다.

다른 학교에서 교사들끼리 소통하면서 수업을 같이 준비하는 모임을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부러울 때가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업무시간에 아이들 가르치는 일로 회의를 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교사회의는 쌍방향의 의사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전달 시간이다. 누구도 그 시간에 아이들 교육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결국 그날그날 교실에서 있었던 일은 나 혼자의 몫인 거다. 나는 옆 교실을 가지 않고, 옆 교실 교사도 내 교실에 오지 않는다. 각자의 교실에서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 민주적 해결 경험 없는 교사들, 아이들에 민주적 교육 가능할까
교장처럼 나도 아이에 일방지시… 교장의 결정권 교사에 배분을


아이들 지도와 전혀 상관없는 사무적인 일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 어느 순간에는 ‘행정실 직원’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무조건 행정업무만 할 때도 있다. 아이들과의 수업 준비가 아니라 학교 업무가 구멍 안 나도록 마무리짓는 게 어느새 1번 과제가 돼버렸다.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 쉬는 시간 10분을 쪼개 일기장과 숙제 검사를 하고, 점심시간 50분 안에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 밥을 먹고 리코더 검사까지 해야 한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하는 오후 3시 이후에는 학생 데이터를 정리하는 행정업무를 처리한다. 하루는 금세 흘러버리고 수업에 대한 고민은 항상 나중으로 미뤄진다. 퇴근한 뒤에도 학교에서의 피로감 때문에 멍한 상태로 보내거나 다른 세상의 사람을 만나거나 그냥 쓰러져 잠든다.

잘못된 것을 나 스스로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도 작지 않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닌다는 이유로 교장실 앞 복도로 다니지 못하도록 했다. 교장 재량으로 통행권을 결정하는 것이다.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교사들은 나서지 못한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힘이나 경험이 교사들에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평가할 때 “아이들을 위해 이런 것도 말하지 못하는 선생이구나”라는 자괴감이 들 때도 많다. 굉장히 불합리한 일을 보면서도 속으로 ‘내 승진을 막느냐’는 한마디에 막혀버릴 때가 있다.

교실을 보면 아이들의 미래가 어느 정도 보인다. 부모의 계급이 대물림되는 상황이어서 아이들의 운명이 결정돼 있는 것이다. 열악한 가정환경의 아이들이 많은 이 지역은 더욱 그렇다. 상담 때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우는 아이나 “엄마가 날 낳고 가버렸대요”라고 무덤덤하게 얘기하는 아이를 보면 무척이나 맘이 아프다. 그럼에도 “신분의 사다리를 뚫고 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자신있게 말해줄 수가 지금은 없는 거다. 어른이자 교사인 나도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학습에 대한 무기력을 어릴 때부터 경험하는 모습을 보면 불쌍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사교육 영향이 가장 큰 영어 수업시간을 보면 특히 그렇다. 3학년 때는 학교에서 처음 영어를 배우기 때문에 그나마 흥미를 가진 아이들이 많지만 5학년만 올라가도 벌써 영어를 포기하는 애들이 많다. 그 아이들에게 영어시간은 그냥 적당히 눈치봐서 때우는 시간이다. 호기심도 없고 지쳐 있는 눈빛들이다. 지난해 맡았던 6학년 교실에서는 아이들의 뼛속 깊은 곳에서 ‘난 공부하기 싫어, 날 건드리지 마시오’라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나는 못하는 아이’라고 자기정체성을 규정하는 거다. 사교육을 많이 받아 이미 영어 단어를 쓰는 친구들 앞에서 알파벳도 잘 쓰지 못하는 아이는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나보다 벌써 영어를 잘하는 아이도 있고 진짜 초보도 있다. 그런 수업을 어떻게 해나갈지 늘 힘들다.

교권의 추락? 그건 감당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학교에서도 남자아이가 교사를 때려서 멍이 든 적이 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아이들에게 마음의 상처가 많은 것 같다. 어른들이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서 아이에게 풀고, 아이는 그것을 감정적으로 모두 받아내고 있다.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해주면 그 아이도 남에게 그렇게 대접할 거라고 믿는다. 사실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더라도 내가 준비가 잘돼 있으면 여유롭게 대처하게 된다. 반대로 나부터 심리적 압박감을 계속 받는 상태이면 아이들이 싸우거나 돌발상황이 일어났을 때 지혜롭게 대처하기보다 스트레스를 먼저 받는다.

그래서 학교가 민주적인 의사소통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교장에게 가 있는 결정권을 교사들에게도 배분해야 한다. ‘학교에서 뭘 개선할까’ ‘운동회를 어떻게 할까’ 같은 문제들을 선생님들이 스스로 논의해야 한다. 지금은 이런 얘기들이 다 죽어 있다. 또 하나는 교사들이 민주적인 문화를 경험해봐야 아이들에게도 가르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도 비민주적인 학교 환경에서 살다보니 아이들에게 민주적인 교육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회의가 들 때가 많다. 교장이 나에게 하듯 나도 아이들에게 일방향적 지시만 하는 것이다. 민주성은 자발성을 이끌어낸다.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하고 그것을 하게끔 해주는 것이 진짜 살아있는 교육이다.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을 곱십는다. 어떤 사람들은 ‘교사는 퇴근시간도 빠르고 방학 때는 쉬는데 뭐가 불만이냐’고 한다. 물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자기 삶을 반추하고 성찰하고 끊임없이 학습하면서 살기에는 교사라는 직업이 좋다고 생각한다. 남들 눈에는 아이들과 만나고 가르치는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도 평범해 보일 거다. 그러나 아이들과 나 사이에 어떤 것들이 오가는지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다. 교육은 표면화된 실적이나 성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뭘 팔아서 수익이 남는 것도, 어떤 보고서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과 만나는 그 시간은 지나면 날아가 버리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 대 사람의 교류인 것이다.

교사가 성장해야 아이들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교사에게 쉼의 시간이 없으면 아이들에게도 기계적으로 대하게 된다. 교사의 개인적인 경험은 수업에 다 녹아들어간다. 교사가 자기계발하고 능력을 쌓는 만큼 아이는 자란다. ‘죽는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늘었는데 그럴수록 아이들에게는 교사가 필요하다. 나는 제대로 된 스승 노릇을 하고 있는 건지 되뇌어보는 5월이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