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파탄·가난에 ‘버려지는’ 다문화가정 아이들 가정 파탄·가난 등 이유로 고아원에 맡겨져 어머니 국적 감추기도…통계조차 없어 소외
한겨레신문-정유경 기자
초등학교 6학년 성훈(13·가명)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눈이 크다. 겉으로 보기에도 쉽게 구분이 된다. 동남아계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는데, 정작 엄마의 고향이 어디인지 모른다. 13년 전 어느 날 충북의 한 보육원(옛 고아원) 앞에서 담요에 싸인 채 발견된 뒤, 지금까지 이곳에서 자라고 있다. 중학교 3학년 최진영(16·가명)군도 베트남 출신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지금은 부산의 보육원에서 자라고 있다. 아버지는 최군이 한 살 때쯤 ‘더 이상 키울 수 없는 형편’이라며 맡기고 갔다. 대여섯 살이 되어서야 어머니가 베트남 사람이며, 최군을 낳고 가출했다는 얘기를 아버지한테 들었다. 가끔 보육원을 찾던 아버지는 현재 몇 년째 연락이 끊긴 상태다.
2일 통계청 자료를 보면, 국내의 결혼이주 여성은 지난해 12만8000명으로 이들에게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자녀는 6만명에 육박한다. 그런데 가난과 가정 파탄 등의 이유로 보육원에 맡겨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육원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 전체 이혼 건수가 지난해 10만5200여건으로 2007년(11만6400여건)보다 줄어들었으나, 국제결혼 이혼 건수는 지난해 1만1255건으로 2007년(8671건)에 견줘 29.8%나 급증했다. 그만큼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가정 해체의 위험에 더 노출돼 있는 것이다.
현재 양육시설에 다문화가정 자녀가 얼마나 수용됐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따로 파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재중동포의 자녀와 같이 외형상 큰 차이가 없고 부모가 이를 숨긴다면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건복지가족부 다문화가족과 관계자는 “아버지가 한국인일 경우 자녀의 국적도 한국이기 때문에, 국내 아동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 보육원 등에 수용될 뿐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현재, 보건복지가족부가 파악하고 있는 전국 242곳의 보육원에는 모두 1만6706명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일부 아이들은 외형상 확연한 차이로 다른 보육원 아이들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훈이도 피부가 검어 ‘필리핀’이라고 놀림을 받는 등 힘겨운 사춘기를 보냈다. 성훈이가 살고 있는 시설 관계자는 “가정에서 부모·형제들의 도움도 없고, 시설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없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성훈이는 최근 지자체에서 진행중인 다문화가정 자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비슷한 친구들과 만나 훨씬 밝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팀장은 “농어촌 지역 빈곤한 다문화가정의 경우 가출이나 이혼으로 가정이 해체되면 자녀를 어머니 본국으로 보내거나 시설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며 “어떤 아이들은 이중의 고통을 받는 만큼 더 많은 사회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